스포트라이트; 자신에게 빛을 비추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미국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 내의 장기 취재 팀이다. 그리고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스포트라이트 팀이 보스턴 교구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스포트라이트팀은 다소 우연한 계기로 취재를 시작한다. 마침 새로운 편집국장인 마티 배런이 부임하게 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의혹만 무성했던 성추행 사건의 취재를 지시한 것이 그 계기이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 팀은 우연에 안주하지 않는다. 수많은 문전박대를 당하며 증언을 모으고, 밤새 도서관에서 가톨릭 사제의 전근 기록을 살피기도 한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언론인들의 모습은 대략 영화의 3분의 2 지점까지 지속적으로 강조된다. 그리고 이 모습은 관객의 입장에서 감미롭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는 이 감미로움에 안주하지 않는다. 취재 과정에서 밝혀지는 바,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은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자행된 일이었고,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오랜 기간 밝혀지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보스턴 교구의 많은 사람들이 아동 성추행 사건에 침묵했고 협력해왔다. 취재 과정에서 공공연한 비밀에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었음이 드러난다. 교구의 상층부에서 치부를 덮기 위하여 피해자들의 청원을 묵인한 채 합의를 종용했고, 진실을 밝히려던 사제들은 해외로 발령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스포트라이트 팀이 진실에 다가서자 가톨릭 교회 쪽 인물인 피트 콘리가 다가와 속삭인다. 팀장인 윌터 로빈슨 만나 그를 회유하며 말한다. “사과 몇 알 썩었다고 상자째 버릴 순 없잖나.” 공공연한 비밀의 뒷편에서는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해온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 장면 이후로 영화는 우연히 발생한 비극에 맞선 필연적인 영웅담이 아니라, 필연적인 범죄극을 우연히 만난 보통 사람들의 회고담으로 변모한다. 가톨릭 교구를 변호해온 짐 설리반은 스포트라이트 팀의 팀장 월터 로빈슨의 요청에 변호사 윤리를 명목으로 진실을 밝히길 주저한다. 게다가 취재를 지휘하는 로빈슨 자신도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과거 자신이 진실을 밝힐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렸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잘못이고 누구까지 연결된 것인가? 편집국장 배런의 말처럼 “우린 어둠 속에서 넘어지며 살아가”고, “갑자기 불을 켜면 탓할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그러나 마침내 설리반은 성추행에 가담한 가톨릭 사제들을 변호해 왔음을, 로빈슨은 과거의 자신이 과오를 저질렀음을 인정하는 선택을 한다. 보도를 앞둔 이들의 행동은 윤리적인 결단의 시작점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피해자가 그들이 아니라 나일 수 있었음을, 그래서 누구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강조한다. 이 말은 반대로 누구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이 일은 굉장히 작아 보일 수 있다. 예를 들면 가톨릭 사제 한 명의 성추행 혐의를 밝힐 수 있는 증거를 잡았을 때, 보도를 잠시 미루어 두는 선택이 그렇다. 이 선택으로 보스턴 글로브는 라이벌 일간지가 특종을 가로챌 위험을 조금 더 감수해야 했고, 취재 기자들은 도덕적인 부채감을 조금 더 오래 짊어져야 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썩은 사과를 몇 개 골라내는데 멈추지 않고, 교회의 조직적인 범죄를 상자째 들어낼 수 있었다. 영화는 철저히 기자의 입장에서 진행되기에 자세히 설명되지는 않지만, 마음을 바꾸고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는 것을 허락한 피해자나, 교회의 반발을 무릅쓰고 문건의 공개를 요청한 판사의 선택도 작은 책임의 일부분이다. 결국 스포트라이트(spotlight)는 진실을 비추는 빛(light)을 어느 곳(spot)으로 향해야 하는지 묻는 영화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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